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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ordinary life

영화<덩케르크>후기 (Dunkirk, 2017)_생존을 향한 본능적 달리기과 명석한 감독의 불친절한 교차 편집의 미학

영화 덩케르크 후기 (Dunkirk, 2017)


"무엇이 보입니까?"

"조국 (home)"

 

영화 <덩케르크>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자, 

극에 심취한 나의 마음을 한순간에 국뽕으로 전락시킨 명대사.

 

헐리우드 전쟁 영화의 기본 틀이라 말할 수 있는 영웅주위는

죽지도 않고 또 이렇게 거장 감독의 작품에도 나왔다

 

'매년 만나는 영웅주의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사실 영화 <덩케르크>를 보고 난 뒤 맨 첫 문장부터 이런 영웅주의 이야기를 적을 줄 나조차 몰랐으나,

영화를 감상한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명대사는 '죽음' '배신' '생존'에 대한 철학이 아닌 '조국(home)'에 대한 갈망이었다.

 

영웅주의에 대한 회의감을 읊기 전,

먼저 영화 <덩케르크>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문을 말해보자면.

명석한 감독의 타고난 감각이 그대로 배출된 작품이라 생각한다.

 


 

영화 <덩케르크>는 창공, 바다, 해안에서의 시간을 한 시간, 하루, 일주일이라는 개별적인 시간으로 펼쳐냈다.

하지만.

감독은 이 다른 공간에서의 시간 흐름을 <덩케르크>라는 공간 안에 교차로 잘 녹여냈다.

 

만약 영화 <덩케르크> 개봉 이전에 누군가가 3가지 다른 시간 개념을 한 공간 안에 담아내려 했다면,

누가 이렇게 매끄럽게 매만질 수 있겠는가.

 

'이 얼마나 대단한 감각인가!'

 

같은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은

마치 석양이 지는 바닷가에 뿌려지는 이슬비처럼 신묘하지만 이질적이지 않는 그림을 만들어낸다.

 

'마치 스위스 명품 시계의 톱니들이 한데 어울려 명확한 초침, 분침, 시침을 움직이는 듯한 느낌?'

 

나처럼 지극히 개인적이고 단순하며 편협한 사고방식에 스스로를 목매던 수많은 이들이

영화 <덩케르크>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자책을 하였을지...

 

'영화를 보는 내내 스스로를 책망하며 먼지 쌓인 스도쿠나 마인드맵 책을 펼칠 사람들의 한숨이 느꼈졌을 정도.'

 

나에게 있어 영화 <덩케르크>는 1. 보이지 않는 죽음을 피하려는 본능적 질주와 2. 투자자의 손을 거친 영웅주의 영화.

그리고 3. 거장 감독의 불친절한 편집의 미학을 느끼게 해 준 작품이다.

 


 

-보이지 않은 생존을 향한 본능적 달리기-  

 

탕. 탕. 총소리가 울리며 병사들이 움직임을 멈추자

젊은 병사는 본능적으로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감독은 친절하지 않다.

 

바람에 흩날리는 무가지와 총소리.

그리고 쓰러지는 병사들을 뒤로한 채

관객은 젊은 병사와 함께 반대편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이것은 생존을 향한 본능적인 움직임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육지와 해안, 그리고 바닷가에서 펼쳐지는 생존을 향한 움직임을 수직적, 수평적 달리기로 보여준다.

 

침수되는 배 안에서의 생존을 향해 수면으로 달리는 수직적 질주와

육지에서 해안, 조국을 향한 생존 본능은 수평적 달리기로 보여진다.

 

<덩케르크> 속 생존을 향한 본능은 단호하다.

죽음에서 도망가는 병사는 한 치의 망설임없이 거침이 없다.

 

개인적으로 전쟁 영화라고 하면 리들리 스코 감독의 <블랙 호크 다운>과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에너미 엣 더 게이트>라 할 수 있다.

 

<블랙 호크 다운> 과 <에머니 엣 더 게이트> 등 수많은 전쟁영화의 주인공들은

삶과 죽음 사이의 선택지 앞에서 셀 수 없이 망설이고 고뇌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하지만 <덩케르크> 속 주인공들은 죽음 앞에서 한치의 망설임없이 본능적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이는 감독이 단순한 감정 놀음을 배제하고 본능에 의한 인간의 생존 욕구를 보여주고자 함이 아닐까?

 

영화 <덩케르크>가 다른 헐리웃 전쟁 영화와 또 다른 점이 있다면,

전쟁 영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타인, 다른 국가에 대한 복수심과 증오심이 없다는 점.

 

여타 다른 전쟁 영화를 보면, 주인공 동료의 죽음은 다른 타인의 죽음보다 항상 명예롭고 대단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료의 죽음은 아름답고 웅장한 반면,

소말라이나 독일 군의 죽음은 그저 인과응보일 뿐이다.

 

하지만 <덩케르크>속  주인공 동료와 전우들의 죽음은 그저 생존을 피하지 못한 이들의 현실이다.

 

 

이처럼 <덩케르크> 영화를 보는 중반부까지는 굉장히 느낀점도 많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허나,

영화 중반부, 누군가 "조국(home)"을 외치는 순간부터

<덩케르크>는 나에게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한 어설픈 감동을 주입시키려 하였으니!

 

 

-투자자의 손을 거친 헐리우드식 영웅주의 본색-

 

더 말해서 뭐하겠는가.

이는 홈(home) 이라는 명대사 하나로 관통시킬 수 있다.

 

"차라리 배 안에서 동료를 버려야 하는 상황을 하나 더 넣어주시지!!"

 

투자자의 손을 거친 헐리웃 영화는

관객에게 교훈과 영감을 무조건 전달해야 한다는 고질적인 병을 고치지 못하는가.

 

'무엇이 보입니까' '조국(home)'

 

이 명대사를 마주한 순간

나는 <덩케르크>속 감각적인 편집과 방향성에 대한 시각을 모조리 잃고

스크린에서 팝콘으로 시선을 옮겼다.

 

(ㅠ_ㅠ 프로불편러가 된 것 같아서 여기까지만 쓸게요. 저만의 생각일 뿐입니다.)

 

 

-감독의 불친절함에 무릎을 탁 치다-

 

사실 <덩케르크>가 멋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감독이 불친절하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는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주인공의 삶이 어땠으며, 이 상황은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리고 왜 하늘과 땅, 바다의 시간이 다르며 이들은 어떻게 만나는지.

왜 미래의 상황이 과거보다 먼저 나오는지.

감독은 전혀 방향키를 설정해놓지 않고서, 관객에게 그냥 즐겨! 라는 식으로 보여준다.

 

때문에 관객은 감독의 불친절함에 더욱 영화에 몰입해야 하고,

그 의미를 찾는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영화에서 하늘과 바다의 시간이 만나는 순간!

내가 느낀 희열은 한동안 영화를 관람하면서 느껴보지 못 한 감정이었으며,

최근 상황과 설정 설명만 주구장창 하다가 망작이 되었다는 영화 <리*>이 떠올랐다.

 

'너무 친절하면 호구가 된다는데... 그 말이 맞는 건지도...'

 

사실 이 <덩케르크>를 보면서 느낀 점은

친절과 불친절 사이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을수록 무언가를 더 설명하고자 하고,

친절이라는 가면 속에서 변명만 늘어놓을 수 있다는 사실.

 

이러한 인생의 명언을 영화 <덩케르크>를 보면서 다시 한번 되새김질 해 볼  수 있었다 :)

 


 

"불친절하지만 짜임새있는 구성으로 관객에게 최고의 몰입감을 선사한 감독."

나에게 "너 따위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매너리즘이 있을 때인가?" 하고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해 준 영화.

그리고 "투자자는 갑이다" 라는 현실을 알려준 시간.

 

이 세가지가 내가 영화 <덩케르크>를 보면서 느낀, 복잡미묘한 감정의 소용돌이였다.

 

아 이제 열일하러 가야지.